서하부원군 (諱子松) 묘표 음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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최고관리자 작성일24-07-11 15:26 조회44회 댓글0건본문
서하부원군 묘표음기
공은 풍천임씨 시니 어사대부 휘 주(澍)는 곧 공의고(考)이시라
고려조 충혜왕(忠惠王) 때 난적(亂賊)을 베시어 특별히 정난공신(靖難功臣)의 호를 내리고 서하부원군(西河府院君)에 봉작(封爵)되시었다.
분묘에 갈명(碣銘)이 없는 거의 무몰(蕪沒) 되였던 것을 가정(嘉靖) 七 년 (중종 23년 서기 1528년)에 六대손 철중(鐵中)이 본 고을에 부임하여 비로소 비석을 세우고 음기(陰記)를 새겼는데 숭정(崇禎) 9년 정축 후 18년 효종(孝宗) 六 년 서기 1655년)에 불초가 본도의 관찰사로 부임하여 이미 해가 오래되어 글자가 민몰됨을 보고 이를 개연하게 여겨 새 돌로 고쳐 세웠다.
을미년 12월 20일
10대손 통정대부(通政大夫) 수 황해도 관찰사(黃海道觀察使) 의백(義伯)근지(謹誌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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